2007_일본여행_아이치의 징용 흔적
동남해지진희생자추도기념비(東南海震災犠牲者追悼記念碑)
아이치현 나고야시(愛知県 名古屋市)
동남해지진은 1944년 12월 7일에 미에현 시마반도 남동 약 20km 앞바다의 해저를 진원으로서 발생한 진도8.0의 대지진이었다.
지진에 의한 가옥의 파괴, 지진 후에 발생한 해일에 의해, 미에현, 아이치현, 시즈오카현을 중심으로 17,800명의 사망자·행방불명자를 냈다. 태평양 전쟁의 한창이던 시기여서 정보는 통제되었었고, 기록 자체가 소멸·유실되어 피해를 파악할 수 없는 지진이었다.
동남해지진희생자추도기념비는 닛신방적 나고야 공장 내에 세워져 있으며 비석에는 지진으로 희생당한 조선인들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평화의비(平和の碑)
아이치현 나고야시(愛知県 名古屋市)
일본 중부지역에 위치한 나고야는 일찍이 군수공업이 발달했다. 전쟁이 격화되면서 나고야는 일본 유수의 군수공장들이 밀집한 거대한 군수공업도시로 변모하고 있었다.
1942년 4월 최초로 일본 본토를 공습한 미군은, 일본이 패전을 선언하기까지 주요도시에 무차별 폭격을 계속했다. 특히 미군은 1944년 12월 B29폭격기가 나고야 미쯔비시 발동기 제4공장을 집중 폭격하는 것을 시작으로, 1945년 7월 26일까지 총 56회에 걸쳐 2,025기의 전투기가 나고야에 출격해 도시를 완전 초토화시켰다.
이 기간 사망자만 8,630여명에 이르렀다. 아울러 부상자가 1만1,164명, 이재민 52만명에 이르는 등 나고야는 회복할 수 없을 만큼 큰 피해를 입었다.
1995년 12월 전후 50주년을 맞아, 동방고교에서는 교정에 1944년 미군의 공습으로 파괴된 나고야 미쓰비시의 발동기 제작소 공장의 벽을 가져다 「평화의 비석」을 세웠다.
토요카와 공습희생자공양탑(豊川 空襲犠牲者供養塔)
아이치현 토요가와시(愛知県 豊川市)
토요카와 해군공장은 1939년 12월 중화기와 탄약을 제조할 목적으로 세워졌으며, 징용공원, 여자정신대원, 학도보국대원을 각지에서 동원해서 총원 56,700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었다.
1945년 8월 7일 오전10시30분, 미국 공군의 폭격에 의해 한순간에 2,670명이 사망했으며, 광대한 공장도 폐쇄되었다.
1962년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어 이 공양탑을 세우고 해마다 위령제를 지내고 있다.
한다 전쟁희생자추도평화기념비(半田 戦争犠牲者追悼平和記念碑)
아이치현 한다시(愛知県 半田市)
1945년 7월 24일 오전 미군 제20항공군 소속의 B29폭격기가 한다시를 공격한다. 당시 한다시에는 나카지마 비행기공장이 있었으며 537톤의 폭탄을 투하했다.
이 공습으로 269명의 시민들이 희생당했다. 이 추도비에는 당시에 희생당한 일본인들과 강제연행으로 나카지마 비행기공장에 일하던 조선인들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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