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산 사진/2002_부활의노래

2002_부활의노래_작업노트

이땅에 2009. 5. 23. 21:06

부활의 노래

2002년 11월 12일(화)-21일(목)

민주공원 기획전시실(부산)

 

 

 

 

 


“개인의 문제로 비관하여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니라
동료와 조직, 나아가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분신, 투신, 할복 등의 방식으로 산화하였거나
민족민주운동 과정에서 독재와 자본 등에 의해
살해된 것이 명백한 경우를 열사라 한다...”

 

 


Ⅰ.

전태일, 김경숙, 박종철, 이한열, 이철규, 강경대, 노수석.....

 

피와 땀과 눈물의 양분 없이 자유의 나무는 자라지 않는다고
우리 곁을 떠난 한 시인은 노래했다.

 

그들은
그렇게도 급하게 우리 곁을 떠났고,
자신의 몸을 불살라 민주의 제단에 피를 보탰다.
그리고 사람들에게서 조금씩 잊혀져갔다.


.....
그러나 그들은 결코 죽은 것도 잊혀진 것도 아니다.

 

그들의 삶은 내 속에 녹아들어 날 살게 하고 있고
내 속에서
또 수많은 민중들의 가슴속에서 더욱 뜨거운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다.

 

 

 

 

 


Ⅱ.

1970년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외치며 청계천의 한 노동자가 분신을 했다.
그의 죽음은 해방 후 오랫동안 억눌려 왔던 변혁사상의 부활을 가져왔다.
그리고 현재까지 330여명이 우리 곁을 떠났다.
.
.
.
잊어버린다는 건 어쩌면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그렇게 엄청났던 일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기억 속에서조차 찾아내기가 힘들 지경이니 말이다.
역시나 그들도 우리 속에서 한때는 그렇게 가슴 깊이 새기며 살았지만
세월 앞에서 조금씩 지워져 가는 듯한 게 날 더 아프게 했다.

 

부활의 노래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 떠난 자들의 이야기, 두 번째 남은 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민주공원 조성(현재 논의가 진행 중임) 이후의 이야기로 나누어 작업이 진행되며,
이 작업은 그 첫 번째 이야기이다.

 

이 작업은 부활의 노래 중 첫 번째 이야기인 떠난 자들의 이야기로
1970년 이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우리 곁을 떠난 분들의 묘소를 찾는 것에서 시작된다.
떠난 지 10년 아니 30년이 지났지만 그들의 묘소는 언제나 새로운 힘으로 다가오는 공간이요, 결의와 각오를 다지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이들은 현재 광주 망월동, 마석 모란공원, 양산 솥발산공원 등 전국 40여 곳의 묘역에 170여 명이 안장되어 있으며, 나머지 분들은 화장되어 묘역이 없는 상태이기에 우선은 묘역이 확인된 분들부터 촬영하였고 묘역이 없는 분들은 추모비나 그들의 흔적들을 촬영하였다.


또한 이 작업 속에서도 죽음의 유형을 나누어 작업을 진행했다.
첫 번째는 타살의 경우이며, 박종철, 이한열 열사 같은 분들로
구 안기부의 공권력에 의해 그리고 집회나 시위 과정에서 살해당한 분들이 해당되며,
두 번째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유래가 없는 분신·할복 그리고 투신 자살로 항거했던 경우이며, 전태일, 김상진, 조성만 열사 같은 분들이 해당된다.
세 번째는 위의 경우는 아니지만 한 생을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위한 길에서
고문 후유증 그리고 병이나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이며
김남주 시인, 김양무 선생님, 이오순 어머니 같은 분들이다.
마지막으로 정권 또 자본의 비열한 폭력 앞에 의문의 죽음을 당하신 분들로
최종길, 신호수, 정경식, 이철규 열사 같은 분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 작업을 통해
나는 내가 죽지 않았음을 안도하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의 안타까운 죽음이 없기를 바라고,
열사·희생자의 명예회복과 의문사 진상규명 투쟁으로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우는
그날까지 함께 할 것이며,
또한 그들의 뜻을 이어받아 삶의 각 현장에서 그들의 정신을 계승하고
그들이 그렇게도 외쳤던 참 민주세상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바램을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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