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_부활의노래_02
전 태 일
1948년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로 근무하던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앞길에서 근로기준법 화형식 도중
"근로기준법을 지켜라"고 외치며 분신, 운명하였다(당시 22세).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김 상 진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1975년 4월 11일 서울농대 교정에서 열린
자유성토대회에서 양심선언문을 읽은 후 민주화를 요구하며 할복자결, 운명하였다(당시 26세).
벽제 국제공원 묘역에 안장
김 경 숙
1958년 전남 광산에서 태어났으며,
1979년 8월 11일 신민당에서 폐업철회 농성을 하던 중
경찰의 강제진압에 항의하여 동맥을 끊고 투신, 운명하였다(당시 21세).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김 종 태
1958년 부산에서 태어났으며,
광주항쟁 직후인 1980년 6월 9일 이화여대 앞에서
노동3권 보장과 광주학살 의분을 호소하는 전단을 배포하고 분신, 운명하였다(당시 22세).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송 광 영
1958년 광주에서 태어났으며,
경원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1985년 9월 17일
군사독재에 항거, 분신하였고 한 달 여를 투병하다 10월 21일 운명하였다(당시 27세).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박 영 진
1960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으며,
(주)신흥정밀에 근무하던 1986년 3월 17일 임금협상과 해고철회 투쟁 중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살인적인 부당 노동행위 철회하라! 노동3권 보장하라!" 외치며 분신, 운명하였다(당시 26세).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이 재 호
1965년 광주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1986년 4월 28일 "전방입소 결사반대", "반전반핵 양키고홈"을 외치며
김세진 동지와 함께 분신하였으며 5월 26일 운명하였다(당시 21세).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진 성 일
1964년 부산에서 태어났으며,
경성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1986년 11월 5일
건국대 농성사건 해명, 군부독재 타도, 미제국주의 축출의 유서를 뿌리고
시청각관 5층에서 분신·투신 운명하였다(당시 22세).
경성대학교 교정에 추모비
박 선 영
1966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났으며,
서울교대에 재학 중이던 1987년 2월 20일
학내 비민주적 학사운영 및 미제국주의 매판세력의 지배를 받는 암담한 조국의 현실에 분노,
항의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목을 매 운명하였다.(당시 21세)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표 정 두
1963년 전남 신안에서 태어났으며,
1987년 3월 6일 서울 세종로 "내각제 개헌 반대! 장기집권 음모 분쇄! 박종철을 살려내라! 광주사태 책임지라!"는 구호를 외치며
서울 세종로 미대사관 앞에서 분신, 운명하였다(당시 24세).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장 재 완
1965년 경남 진양에서 태어났으며,
방위병으로 근무 중이던 1987년 3월 23일 귀가 중 버스에서 중요문건이 든 가방 분실하여 괴로워 하던 중
3월 27일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고 동지들과 조직을 지키기 위해 자결, 운명하였다.(당시 22세)
부산대학교 교정에 추모비
조 성 만
1964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1988년 5월 15일 명동성당 교육관 옥상에서
"양심수 석방하라! 조국통일 가로막는 미국놈들 몰아내자!"는 구호를 외치고 할복, 투신, 운명하였다(당시 24세).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박 래 전
1963년 경기 화성에서 태어났으며,
숭실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1988년 6월 4일 학생회관 옥상에서
"광주는 살아있다!", '청년학도여 역사가 부른다 군사파쇼 타도하자!"라고 외친 후 분신, 6월 6일 운명하였다(당시 25세).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양 영 진
1967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났으며,
부산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1988년 10월 10일
"이제 조국 산하에 실하디 실하게 뿌리박은 진달래가 되고파 하며..."
라고 절규한 후 재료관 5층 난간에서 투신, 운명하였다(당시 21세).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박 승 희
1971년 전남 목포에서 출생하였으며,
1991년 4월 29일 전남대에서 고 강경대 열사 추모 및 노태우 정권 퇴진 결의대회 중
"노태우 정권 타도하고 미국놈들 몰아내자!"라고 외치며 분신, 운명하였다.(당시 20세)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윤 용 하
1969년 전남 승주에서 태어났으며,
1991년 5월 10일 "노태우 정권 타도!"를 외치며 전남대에서 분신하였으며,
5월 12일 "노동해방을 위해 분신을 생각했다.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에게 착취당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단결해 싸워주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운명하였다(당시 22세).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에 안장
권 미 경
1969년 전북 장수에서 태어났으며,
(주)대봉에 근무하던 1991년 12월 6일 살인적인 노동통제에 항거하여 회사옥상에서 투신, 운명하였다(당시 22세).
양산 솥발산공원 묘역에 안장
양 봉 수
1967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났으며,
1995년 5월 12일 현대자동차 공동소위원연합 2기 출범식 참석을 위해 정문 진입시
경비들의 폭력적인 저지에 항거하며 본관 정문 앞에서 분신, 6월 13일 31일간 사투 끝에 운명하였다(당시 28세).
양산 솥발산공원 묘역에 안장
조 수 원
1967년 강원 태백에서 태어났으며,
1986년 대우정밀공업에 병역특례로 입사하였으나 1991년 노동조합 활동과 관련 해고된 후,
3년 동안 민주당 서울시 지부에서 병역특례 문제 해결을 주장하며 농성을 벌이다
1995년 12월 15일 목을 매 자결하였다(당시 28세).
양산 솥발산공원 묘역에 안장
최 대 림
1957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났으며,
1998년 2월 13일 대우조선에 근무하던 중
정리해고, 근로자 파견법 입법화에 반대하면서 건조 중이던 배 위에서 분신 투신, 운명하였다.(당시 42세)
양산 솥발산공원 묘역에 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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