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240만명 정도 있었던 재일조선인들은 해방의 기쁨을 안고 조국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으며, 남은 동포들의 대부분도 귀국을 희망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군정의 실시, 해방직후의 정치경제적 혼란, 물가의 폭동 등 조선반도에서 일어난 모든 번잡한 제상황은 귀국을 기다리던 동포들을 계속 일본에 머물게 하였다.
남은 이들에게는 자녀들의 교육문제가 큰 문제로 나섰다. 재일동포들은 식민지민족으로서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었고 설사 학교에 다녔다해도 천황의 적자를 키우기 위한 교육, 황민화교육이었다. 해방된 민족으로서 우리말과 글로 교육을 시키고 싶다는 동포들의 열망은 대단히 높았다.
그리하여 해방이 된 후 8월부터 국어강습소 형식으로 동포 자녀들에 대한 교육이 시작되었으며, 재일본조선인련맹(조련)이 결성된 후로 학교 형태로 바꾸고 체계성 있는 교육활동을 전개하였다.
1948년 1월 24일 일본 문부성은 조선인 학생들은 모두 일본의 학교로 옮겨야 한다는 지시를 내려 우리학교를 폐쇄하려고 하였다. 이에 그 조치를 반대하여 치열한 민족교육, 우리학교 사수투쟁이 벌어졌다. 이 투쟁은 4월 24일에 절정에 이르렀고 오사카, 고베지방이 치열한 투쟁을 벌였다는 것으로 일본각지에서 벌인 민족교육을 사수하기 위한 투쟁을 ‘4.24교육투쟁’, ‘한신교육투쟁’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일본 정부당국은 재일본조선인련맹을 강제해산(1949년 9월 8일)시킨 이후 1949년 10월 19일에 조선인학교폐쇄령을 내려 또 다시 우리학교를 탄압하였다. 민족교육의 환경은 더욱 좋지 않았으나 동포들은 이 시기 중학교를 증설하고 고급학교를 창설하며. 민족교육체계를 더욱 갖추어 나갔으며 차별과 탄압 속에서도 60여년을 이어오며 우리말과 글을 지켜왔다.
일본은 재일조선인을 인정하지 않는다.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실제 존재하는데 무시한다. 있는데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 일본이란 섬 안에 ‘우리학교’가 있다. 우리에게 우리학교는 자랑스러운 학교이다. 일본 땅에서 60여년간 우리말과 우리 글 그리고 우리 전통을 지켜온 학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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